바와를 만나다

스리랑카의 건축가, 제프리 바와 

스리랑카의 건축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1919-2003)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스타 건축가이다. 그는 열대 모더니즘(Tropical Modernism)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인재가 부족했던 스리랑카는 바와에게 많은 프로젝트를 맡겼다. 바와는 40여 년간 개인 주택, 정원, 호텔, 오피스 빌딩, 학교, 관공서 건물, 상점까지 약 50채의 건물을 설계했다. 아마 닥치는 대로 지었던 것 같다. 마치 자신이 집을 짓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연습은 그를 성장시켰다. 개인적으로 방황했던 시기들은 성숙함의 토대가 되었다. 후에 바와는 정말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되었다. 


혼혈인 건축가, 다양한 문화를 접목시키다

바와는 1919년 유복한 법률가의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 터울인 바와의 형(Bevis Bawa)은 조경 계획가로 그 또한 이름을 알린 사람이었다. 생김새만 따지고 보면, 바와는 꼭 백인처럼 생겼다. 바와의 할아버지는 타밀(Tamil)인으로 영국인과 결혼했고, 바와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혼혈인과 결혼했다. 

오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인과 현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 스리랑카에는 상당히 많았다. 스리랑카에서는 혼혈인들을 버거(Burgher)라고 불렸는데,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상당수의 버거가 존재했지만 식민지 정부는 그들을 사회조직에 완전히 편입시키길 꺼려했고, 스리랑카인들도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런 혼혈인으로서의 삶이 바와에게 끼친 영향은 상당했을 것이다. 바와는 유럽인도 아니었고, 스리랑카인도 아니었다. 

또한 그는 독립 후 혼란스럽고 역동적인 시기를 거치면서 젊은 시절의 3분의 1을 스리랑카 밖에서 지냈다. 그야말로 어느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의 바와는 인생을 방황하며 지냈다. 그러나 이런 방황의 시기는 그를 훌륭한 건축가로 자라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못했기에, 다른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렇게 제프리 바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바와가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

사실 제프리 바와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쉽게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간결함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복잡한 사상이나 철학으로 자신의 공간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의 공간에 앉아서 차 한 잔을 할 정도의 시간을 가진다면 금방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바와의 건축에 쉽게 동화되어, 그의 의견에 납득할 수 있었다. 

바와의 건축은 항상 주변과 관계를 가진다. 그의 공간에서 주변이란 때로는 그 날의 바람, 빛이기도 하다. 혹은 오솔길, 나무, 비, 습도 가득한 공기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평범한 강이거나 못생긴 바위가 되기도 한다. 굳이 대상이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볼품없이 날리는 먼지도 존재할 가치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의 공간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제스처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근사하게 잘 지어진 건물들은 생각해 보라. 그러한 공간들은 마치 소셜 네트워크 속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그 공간들은 아름답지만 편안하지 않으며 인공적인 공간들이다. 비싼 가전제품이나 가구로 가득 둘러싸인 공간이다. 그리고 주변과 아무런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공간만 홀로 화려할 뿐이다. 

그렇지만 바와의 건축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회유한다. 그의 공간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를 봐주러 오는 것도 고맙지만, 그것보다는 여기에 앉아서 저 밖에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는 건 어때? 이제 막 꽃을 피기 시작했거든. 뭐, 그렇게 바쁘지 않다면, 홍차라도 한잔하고 갈래? 정 바쁘면 잠시 땀이라도 식히고 가. 이제 바람도 좀 불어올 거야.”

그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보다 주변의 환경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건 마치 겸손한 사람의 따뜻한 제스처를 보는 것만 같다. 




가난에 대한 지독한 편견

개인적으로 그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 중의 하나는, 이렇게 가난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처럼 매혹적인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냐는 점이다. 변변한 가구나 가전제품 하나 사기가 힘든 그런 나라에서 말이다. 하다못해 양은 주전자 하나 주물 할 기술이 없어 인도에서 수입하는 나라가 바로 스리랑카다.

스리랑카의 오랜 내전과 끈질긴 가난은 제대로 된 건축기술을 발전시킬 여력을 주지 않았다. 또한 건축자재의 수입도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 바와가 만들어낸 공간이 사실 우리나라 어느 건축가보다 낫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제프리 바와를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건물이 정말 아름답다는 건 그렇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는 내가 가진 가난한 나라에 대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 주었다. 

그 기준은 너무나 상대적이다. 그가 만들어낸 공간들을 여행하면서 오랫동안 나를 길들여왔던 기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우리가 가졌던 그 믿음 이외에 또 다른 가치들로 둘러싸인 새로운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 깨지기 시작한 편견은 수많은 의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한국에서 쌓아온 가치관, 믿음, 논리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