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공간에서 배움을 얻다

가난한 자의 공간

우리나라의 건축계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이 있다. 그분의 말이라면 모두가 귀를 기울일 정도다. 나는 건축을 공부하던 학창 시절부터 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을 공부하며 자랐다. 그 스타 건축가를 향한 막연한 동경은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이어지곤 했다. 사실 그분은 대단한 사상가였다. 그리고 대단한 경지에 오른 분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건축가의 이름은 승효상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빈자의 미학’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머리를 약간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려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그 어떤 건축가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을 모티브로 한 건물을 위해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물론 승효상 건축가가 말한 그 ‘빈자’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질적 빈곤의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의 용어 선택에서 빈자란 ‘비움’을 뜻한다. 공간의 비움, 그러나 깔끔하게 비워진 생활을 유지하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승효상 건축가가 말한 ‘가진 게 없는 자’의 공간은 심플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값비싼 재료로 채워지는 공간을 말한다. 승효상에게 가난은 그저 낭만적 감수성이 흠뻑 담긴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단어의 뜻 그대로 가난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건축도 아니며, 약자를 위한 배려도 없는 공간이다.          

물론 집을 짓는다는 건 자본가의 의뢰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행위다. 그렇기에 건축가가 의뢰자 이외의 사람들을 배려할 의무는 딱히 없다. 따라서 건축가 승효상의 행동도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그는 지극히 아름다운 건물을 자신의 유명세에 맞는 의뢰비를 받으며 집을 설계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의 집들이 모여서 도시라는 조금 더 큰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빈자와 부자가 공존하고, 약자와 강자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사회를 이룬다. 이것뿐인가? 우리는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자연을 밀어내고 있지만, 점차 우리에게 남는 건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다.           


반짝이는 보물섬의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

인도양의 끝에 위치한 작고 가난한 섬나라, 스리랑카를 방문하려면 많은 이유가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생김새와 문화가 인도와 비슷하기 때문에 곧잘 인도의 작은 버전이라고 불리는 곳, 그래서 인도를 여행하거나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갈 때 그냥 잠시 들리는 곳으로 알려진 나라가 바로 스리랑카다. 그러나 그 복잡하고 다난했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두고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기엔 아쉬움이 크다. 

이 작은 섬나라는 오래전부터 외지인들이 비밀스럽게 동경하던 장소였다. 신밧드가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고대의 페르시아인들은 보석과 향신료를 거래하기 위해 이곳을 드나들었고, 그 후손들은 이곳에 정착해 여전히 보석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의 보석은 영국 왕실이 주요 고객일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정말 이곳은 보물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사파이어보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들이 많다. 

아주 예전의 아랍인들은 스리랑카를 세런딥(Serendib)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후에 세런딥이라는 단어는 세런디피티(Serendipity)의 어원이 되었다. 그 말에는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 아름다운 말처럼, 스리랑카는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 우연히 당신에게 찾아오는 곳이다. 또한 스리랑카는 우리가 바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곳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친절한 미소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부자가 되는 손쉬운 방법

내가 스리랑카에 오게 된 건, 조금은 건방지고 조금은 착하게 살아보자는 이유였다. 그들은 가난했고, 나는 그들을 잘 살게 만들어줄 기술을 가르치고 싶었다. 나는 한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러 온 한국인 봉사자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마치 문명이 없는 곳에 문명을 전파하러 온 사람처럼 의기양양했다. 현지인에게 거만했고, 나의 방식과 지식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름 선진국에서 온 고등교육을 마친 인재였기 때문이다. 

난 여기서 부자다. 아, 물론 진짜 부자는 아니다. 아니, 부자가 맞는 것도 같다. 이제는 나도 부자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여하튼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한국에서는 결코 누구를 도와주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당혹스럽게도 이곳에서 나는 부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현지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고급 교육을 받았다. 스리랑카에서는 최상류층이나 취득할 수 있는 석사 학위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건 한국에서는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았던 학위였다. 

가끔은 현지인들 점심값의 4배가 훌쩍 넘는 어느 국제 기업의 커피도 한 잔 할 여유도 있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호기롭게 동네 아이들에게 초코바를 쥐여 주기도 하고, 더운 날은 부담 없이 학생들에게 음료를 대접할 돈도 있으며, 동료 선생들을 다 모아 홍차를 마시고 계산하고도 남을 돈이 항상 주머니에 있었다. 그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도 되지 않았다. 

어떤가? 이 정도면 부자가 아닐까? 

세상에는 이렇게 몇 시간의 공간이동으로 순식간에 부자가 되는 손쉬운 방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상대적이다. 가난하고 부자인 것은 상대적인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가난한 공간을 여행하다

내가 건축학도였던 시절, 나는 선진국의 선진 기술로 만들어진 건축만을 공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진 건축기술이 정답만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졸업을 하고 꽤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우연히 스리랑카의 건축가 ‘제프리 바와’를 알게 되었고, 가난한 나라의 건축에서 더 많은 배움이 존재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스리랑카에서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 밑바탕에는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자만이 마음속 깊은 곳에 깔려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이런 저개발 국가에 제대로 된 게 하나라도 있겠어?’ 

그 당시의 난 소위 못 산다는 이 나라를, 그리고 그들의 삶을 한껏 얕보았던 게 분명했다. 

그들의 삶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러고 사니 지지리도 가난하지.”

나는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암묵적으로 그리고 소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렇게 그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함부로 평가받고 만다.

그 모든 기준들, 우리가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기준들은 어디서 오는가? 그건 잘못된 선입견에서 온다.             



이상한 일들이 내게 벌어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차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으로 점점 녹아들어 갔다. 그런 그들과 어울리며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상한 일들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가르치러 이곳에 왔지만, 난 오히려 더 많은 깨달음을 그들에게서 얻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밝았고, 검소한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타인에게 겸손했다. 오만했던 나에게 그들은 친절했고 웃음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