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저는 공무원입니다

저는 세종시 8급 공무원입니다. 지금은 아름동 주민센터에서 임대사업자 등록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원래 제 꿈은 공무원이 아니었습니다. 대학 시절 철학 공부에 뜻을 두고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파리 8대학에서 석사 때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사건 개념을 중심으로 학위를 받았고 박사 때는 잠재적 물질이라는 주제로 논문 발표를 통과하였습니다. 제 꿈은 훌륭한 인문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철학 공부를 하는 동안 글 쓰고 강의하는 데에 저의 나머지 인생을 바칠 것이라는 생각에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었습니다. 박사과정 중간에 철학 공부에 큰 회의가 들고 나서 고비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문학자의 꿈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 강사 자리를 구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노력을 하였습니다. 저는 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 이곳저곳에 강사 자리를 문의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많은 대학에서 철학과는 축소되거나 폐지되고 있는 추세라서 메일을 보낼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습니다. 모교의 교수님을 찾아가 말씀도 드려보았지만 강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중 파리에서 지불하고 있는 높은 집세가 너무 아까워서 지도교수님 허락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논문 준비를 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교의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그런 이야기는 다른 데에 가서는 하지 말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다시 교수님을 찾아가고 싶지가 않아져서 강의 청탁을 그만두었습니다.

한 선배님이 우선은 학회에 많이 참가하여 발표를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학회는 저에게 너무 따분했습니다.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는 긴 이야기들이 학회 시간을 채웠고 학술지에 게재해야 했던 논문 쓰기도 저에게는 고역이 되었습니다. 1년여를 집에서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우울과 괴로움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는데 자살할 배짱까지는 없었던 터라 인간의 자연적인 수명이 40살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철학 학위를 가지고 대학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도 또 제가 일하고 싶은 곳도 아무 곳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살고 싶지 않았지만 자살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우울 속에 침잠한 채 아파트 제 방 창문에서 창문 밖 아래를 쳐다보며 저 아래로 떨어지면 나의 몸이 어떤 형국을 띠게 될까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어떻게든 다시 살아볼 요량으로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3년 반 정도를 보냈는데 불어 수준이 중상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7급 외무영사직이었습니다. 시험 과목은 국어, 영어, 국사, 헌법, 국제법, 국제정치, 제2외국어 이렇게 일곱 과목이었는데 영어와 불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다섯 과목만 열심히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공부하기에 가장 어려운 과목은 국제법과 국제정치학이었습니다. 다른 과목들은 이미 이름난 교재도 강사도 여럿 있었지만 그 두 과목은 선택할 수 있는 교재와 강사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시험을 몇 달 앞두고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그 두 과목은 시험 문제와 교재의 범위가 영 일치하지를 않았습니다.

모의고사를 크게 망친 후 조급한 마음과 걱정이 커져서 하루 공부시간을 열세 시간으로 늘렸습니다. 그렇게 3주를 보내고 났더니 몸에 무리가 와서 체력이 바닥나 버렸습니다. 한 달을 골골대며 공부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게 되었습니다. 보약을 한 재 지어먹고 한 달쯤 지나 기운을 되찾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긴 하였으나 공무원 시험 공부는 저에게 참으로 고역이었습니다. 저는 웬만해서는 같은 책을 한 번 보고 나면 논문을 쓰기 위한 경우와 같이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니고서는 여러 번 다시 보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그런 제 공부 스타일로는 시험 공부를 도무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세한 내용을 모두 암기할 때까지 똑같은 교재를 스무 번, 서른 번씩 봐야 하는 시험 공부가 저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문 같았습니다.

시험일이 점점 다가왔지만 저는 시험 공부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다해서 1년 정도를 시험 준비 기간으로 보냈는데 그중 석 달 정도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은 채로 지나갔습니다. 시험에 떨어질 것은 미리 예상을 하였지만 결과는 처참하였습니다. 최종 합격 커트라인이 80점대 중반 정도였는데 저의 전체 평균은 60점 대였습니다. 헌법은 시험 전 성의 없이 한두 번 슬쩍 들춰본 최신 판례에서만 문제가 과반수 이상이 출제되었습니다. 국제법과 국제정치는 교재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내용들이 절반을 넘었습니다. 7급 외무영사직 시험 수준은 제가 시험 준비 전 예상했던 것 훨씬 그 이상이었습니다. 처음 시험 준비를 시작할 때 일 년 안에 공무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단번에 무색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 공무원 되기 게임을 어떻게 하면 가장 단시간 내에 끝낼 것인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